(출처-데일리메일 Daily Mail)
2011년 12월. 독특하고 거대한 곤충 하나가 인터넷 뉴스를 사로잡았습니다. 뉴질랜드 리틀베리어 섬에서 곤충 전문 사진작가 마크 모펫(Mark Moffet)씨가 발견한 이 곤충은 손바닥만한 크기에 당근 하나를 통째로 먹어치우는 식성으로 그 위용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곤충의 정체는 바로 무엇일까요? 바로 '웨타(Weta)'. 그 중에서도 리틀베리어 자이언트웨타(Deinacrida heteracantha) 라는 종류입니다. 웨타라는 곤충에 대해 자세히 알아봅시다.
(한눈에 봐도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리틀베리어 자이언트웨타. 출처 구글이미지)
웨타Weta 는 뉴질랜드에 서식하는 메뚜기목 토종곤충으로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웨타'라는 말은 마오리족의 언어인 'Wetapunga'에서 유래했는데, 뜻은 '가장 못생긴 것들의 신' 이라고 합니다. 웨타 자체가 특정 종의 명칭이 아닌 총칭인 셈이지요. 가장 유명한 것은 커다란 자이언트웨타(Giant Weta, Deinacrida)와 크기가 약간 작지만 호전적인 트리웨타(Tree Weta, Hemideina)입니다. 그 밖에도 턱이 독특한 송곳니웨타(Tusked Weta, Motuweta), 땅웨타(Ground Weta, Hemiandrus) 등이 있지요.
뉴질랜드에서 'Weta' 라고 불리는 종류는 아래와 같습니다.
여치사촌아과 (Anostostomatinae)(출처 Wikipedia)
자이언트 웨타는 전 세계의 곤충 중 (성충 기준으로) 가장 무거운 곤충으로 유명합니다. 알을 밴 암컷의 무게는 최대 71g을 기록했으며, 이는 참새 3마리의 무게와 맞먹습니다. 크기도 매우 커서 다리를 쫙 피면 그 길이가 무려 17cm를 넘나든다고 하네요. 이런 자이언트웨타의 거대한 크기는 웨타가 사는 섬과 관련이 있습니다.
자이언트웨타는 뉴질랜드 본토 주변의 쿡 스트레이트 섬, 리틀 베리어 섬 등에 서식합니다. 아주 오래 전에는 뉴질랜드 본토에 섬이 붙어있었는데, 자이언트 웨타의 조상도 그곳에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각 변동으로 섬들이 뉴질랜드 본토에서 떨어져 나와 고립되면서 자이언트웨타도 같이 떨어져 나와 섬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위협하는 포식자가 없어 섬에 잘 적응한 자이언트웨타는 육지의 다른 웨타들보다 크기가 더 커지게 됩니다. 이를 '섬 거대화(Island gigantism)' 현상이라고 부르며, 멸종한 세인트헬레나집게벌레나 코끼리새도 이에 해당합니다.
자이언트웨타는 성충으로 대략 2년을 살며, 낳는 알의 수는 80~300개 내외입니다. 식성은 초식성이지만 종종 죽은 곤충을 먹어치워 생태계의 청소부 역할을 하지요. 천적의 영향이 없어 개체수가 일정하게 유지되었지만 사람들의 정착으로 인해 설치류가 함께 유입되었고, 자기 방어 능력이 거의 없던 자이언트웨타는 쥐의 영향으로 개체군에 위협을 받아 그 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어 멸종 위기에 처했습니다. 다행히 이 사실을 인지한 뉴질랜드 연구원들은 자이언트웨타를 보호하는 복원 연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오클랜드 동물원에서는 멸종위기에 처한 자이언트 웨타를 보호 및 사육하고 자연에 방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답니다.
(오클랜드 동물원에서의 웨타 보호 프로젝트. 자이언트웨타를 사육하여 자연에 방생하는 중대한 프로젝트이다.)
(웰링턴 트리웨타 수컷. 커다란 머리가 특징이다. Steve Reekie 님의 사진. 무단 도용을 금지합니다.)
같은 웨타지만 거대하고 온순한 자이언트웨타와는 달리 트리웨타(Hemideina)는 4~8cm가량으로 크기가 작고 호전적입니다. 뉴질랜드에는 8종 정도의 트리웨타가 서식하는데, 잘 알려진 것이 오클랜드 트리웨타(Hemideina thoracica)와 웰링턴 트리웨타(Hemideina crassidens) 입니다.
위기에 처한 자이언트웨타와는 달리 오클랜드, 웰링턴 트리웨타는 개체수가 비교적 많으며 호주 남동쪽까지도 분포합니다. 트리웨타는 길쭉한 몸에 커다란 머리가 특징인데요, 수컷은 머리가 크고 큰턱이 발달했으며 암컷은 머리가 평범합니다. 그 이유는 사슴벌레처럼 수컷이 암컷을 두고 서로 경쟁하기 때문입니다.
트리웨타는 이름의 '나무'(tree)에서 보여주듯이 다른 곤충이나 동물이 사용한 나무구멍에서 살아갑니다. 수컷은 여러마리의 암컷을 거느리고 사는데, 다른 침입자가 나타나면 커다란 머리로 밀어붙이고 큰턱으로 깨물면서 맞서 싸웁니다. 승자는 암컷을 차지하게 되지요. 이들의 호전성은 유튜브 동영상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나무웨타 중에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겨울을 나는 종도 있습니다. 고산지대에 사는 마오리트리웨타(Hemideina maori)는 11월중 서리가 내리면 서리에 자신의 몸을 얼립니다. 몸이 얼어 활동이 중지되면 그대로 겨울을 났다가 봄이 되어 서리가 녹으면 활동을 다시 시작합니다. 참 독특하지요?
송곳니웨타(Tusked Weta)는 'Tusked'라는 이름처럼, 수컷의 큰턱이 엄니처럼 발달하여 사슴벌레의 큰턱처럼 앞으로 돌출되어 있습니다. 이 턱은 수컷의 크기에 따라 더욱 발달되는 상대성장(allometry)을 이루지요. 수컷은 이 큰턱을 이용해 다른 수컷과 힘을 겨루고, 암컷을 차지합니다.
웨타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다리에 억센 가시가 나 있습니다. 적의 위협이 가해질 때 다리를 번쩍 들어올려 흔들면서 위협한다고 합니다.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시가 발달한 것입니다. 뉴질랜드의 원시림 속에서 각자의 생존 방식을 터득하며 살아가는 웨타들의 모습이 색다릅니다.
웨타는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는 곤충은 아닙니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는 키위새와 함께 자국을 상징하는 곤충으로 유명합니다. 웨타 워크숍(WETA Workshop)의 이름에 들어가는 상징으로 회사 로고와 건물에도 웨타 상징물이 있습니다. 웨타 워크숍은 각종 특수효과 제작 영화로 유명하니 우리한테 완전히 낯설은 곤충은 아닌 것 같네요.(웨타 워크숍이 지원한 영화 '킹콩'에 트리웨타가 잠깐 나오기도 합니다. 사람을 잡아먹는 악역으로...=_=;;) SBS의 한 프로에서는 뉴질랜드의 원시림을 소개하면서 웨타가 잠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SBS 프로에서 나온 트리웨타.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하지만 이 프로에서는 잘못된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로 '뉴질랜드 꼽등이' 라는 자막입니다. 이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꼽등이 노래와 함께 웨타를 '진화가 멈춰버린 뉴질랜드 꼽등이' 라고 소개하는데, 과연 웨타는 꼽등이일까요?
웨타와 꼽등이는 모두 메뚜기목의 여치아목(Ensifera. 여치, 귀뚜라미, 꼽등이 등이 속함)으로 분류되며, 실과 같이 가느다란 더듬이와 칼모양의 산란관이 특징입니다. 하지만 웨타는 꼽등이도, 어리여치도 아닌 '아노스토스토마티다이과(Anostostomatidae)' 라는, 완전히 다른 분류군에 속합니다. 아노스토스토마티다이과는 일본 남부, 중국 남부, 아프리카, 남미, 오세아니아 대륙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는데, 한국에는 서식하지 않아 국명이 없습니다. 아노스토스토마티다이과는 꼽등이나 어리여치보다는 진화한 그룹으로 여치과와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일부 종류는 여치처럼 앞다리에 고막이 있어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억지로 우리말 이름을 붙여 본다면 '여치사촌과', '여치붙이과' 정도가 좋을 것 같군요.
뉴질랜드에서 '케이브 웨타' 라고 불리는 꼽등이의 일종 © Dr Paddy Ryan
하지만 모든 웨타가 아노스토스토마티다이과에 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뉴질랜드에서는 꼽등이를 '동굴웨타(Cave Weta)'라고 부르고, 꼽등이 중에 Weta라는 속명을 가진 종류도 있습니다. 웨타라고 불리는 꼽등이들(Macropathinae)도 있습니다. 하지만 위 프로에서 소개된 트리웨타. 그리고 자이언트 웨타는 결코 꼽등이가 아닙니다. 앞으로 과학을 다루는 인터넷 매체와 프로그램에서 신경을 써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웨타와 그 종류들에 대한 전문적인 서적으로는 2001년 출판된 <The Biology of Wetas, King Crickets and their alies> 가 있습니다. 영문 서적이고 가격이 높기 때문에 구하기가 쉽지 않지만 웨타와 비슷한 종류들에 대한 분류체계와 각종 습성, 생태에 관한 연구자료가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처
영문판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Weta
http://www.nhc.net.nz/index/insects-new-zealand/weta/weta.htm
https://thekellylab.wordpress.com/
http://www.abc.net.au/news/2014-04-04/giant-weta-before-release-on-motuora-island/5367402
http://www.doc.govt.nz/conservation/native-animals/invertebrates/weta/
http://rstb.royalsocietypublishing.org/content/363/1508/3427.full
웨타는 꼽등이와 완전히 다른 곤충인데도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건지 꼽등이로 소개하더랍니다. 그 밖의 동물 소개도 아쉬운 부분이 많았씁니다.
리옥크가 생각났지만 아닌 것 같고!
멸종 위기면 잘 보존해야겠네요~
웬지 때로 날아다니면......... ^^;;